Criticism? p. 28.
다시 2년 후인 1956년에는 W. Marxsen이 같은 관심을 가지고 마가복음을 다룬 연구서(Der Evangelist Markus W. Marxsen, Der Evangelist Markus: Studien zur Redaktionsgeschichte des Evangeliums, 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56. 이 책은 1969년에 Mark the Evangelist(New York: and Nashville: Abingdon Press)란 이름으로 英譯되었다.
P. 14): 신약성서의 연구사를 왜 종교개혁부터 시작하는가, 신약성서는 2,000년되지 않았는가 - 종교개혁 이전의 신약성서 연구는 다룰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종교개혁이전에는 다룰만한 것이 왜 없었는가 - 중세기(500-1500년)는 암흑의 시대라고 말한다. 중세기를 로마 카톨릭이 지배하면서 성서를 철저히
Theologie)에서 그는 역사적 방법과 교조적 방법의 대조적 관계를 파악하면서 기독교가 일반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분리주의적 태도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었다.
트뢸치는 단순한 역사상대주의는 경계하면서도 비겁한 방식의 기독교 절대화
1. 다윈과 19세기의 과학 공동체 헌터 두프리, “다윈 시대의 기독교와 과학 공동체” in : 데이비드 C. 린드버그 편, 「신과 자연 : 기독교와 과학, 그 만남의 역사(下)」, 박우석․이정배 역,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9) p. 472~493
(1) 19세기 초반의 과학과 종교의 관계
과학과 종교는 다윈의
p. 36.
이와 유사한 입장은 리처즈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기독교교육이 신학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Lawrence O. Richards, “Experiencing Reality Together: Toward the Impossible Dream”, Norma H. Thompson, ed., Religious Education and Theology (Birmingham, Ala.: Religious Education Press, 1982), 198-217; 손승희 역, 『종교교육과 신학』
인간의 삶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확신에 따라서 사는 한 개인이나 한 공동체의 삶의 스타일이다.(Bradley Hansen, Christian Sprituality and Spritual Theology, Dialogue 21, 1982, p. 207)”라고 말하였다. 브래들리 한센의 이와같은 정의는 삶에 대한 이해와 이에 따른 구체적 표현이라는 영성의 두가지 면을 제시하고 있다.
루터는 스스로 “그들은 나를 고정된 별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불규칙한 행성이다.” William C.Placher, A history of christian theology, 박경수 역, 『기독교 신학사』(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티) 266p
라고 불평했다. 루터가 불평했던 것처럼 그의 신학 사상의 변화와 모순에 대해서 우리는 그를 고정된
루터는 스스로 “그들은 나를 고정된 별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불규칙한 행성이다.” William C.Placher, A history of christian theology, 박경수 역, 『기독교 신학사』(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티) 266p
라고 불평했다. 루터가 불평했던 것처럼 그의 신학 사상의 변화와 모순에 대해서 우리는 그를 고정된
“과정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과정(혹은, 생성)의 개념에 젖어 있는 문화에서 기독교 신앙의 적실성, 특히 이 세계와 하나님의 관계라는 것이 적절함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Stanley J. Grenz and Roger E. Olson, 20-Century Theology, 신재구 역, 『20세기 신학』, 207p
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정 신학은 하나
p. 213.
그런데 1950년대에 와서 폰 라트(Von Rad)의 구속 신학이 급부상하였다. 물론 그의 신학에도 여러 한계가 있어서 많은 도전과 반박을 받았다. 즉 모든 관점을 은혜와 구속의 시각으로 봄으로 성경이해에 있어서 통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1990년대에 와서 다시 계약의 개념이 거론되고